스트리트 포토그래피란 무엇인가 제 1 편 : 예술장르로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란

2018. 11. 21. 07:54아르티움 1.0/스트리트 포토그래피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란 무엇인가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street photography)는 그 정체성이 애매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애매함 그 자체가 곧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의 정체성이다. 여기서 애매하다는 말의 뜻은 사진이 선명하지 않다거나 사진 속 물체들의 테두리가 불분명하다는 말이 아니다. 애매성은 장르로서 애매성을 가리키며 장르로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확연히 이렇다 할 특징들의 총합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 애매성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보다 훨씬 더 공고하게 구축되고 이어져 온 다른 장르들과 같이 비교했을 때,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어디에도 끼지 않는 어중간함, 즉 애매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장르로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그 특징을 애매성이라고 잡을 수 있는데 여기서 애매성이란 다른 더 분명한 장르들과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그 어떤 어중간함, 어디에도 끼지 않는, 그런 특징이다.

 

공고하게 구축된 장르로서 사진은 여러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인물/초상화 장르, 자연/풍경 장르, 매크로스코피 (근접 촬영) 장르, 패션/화보/모델 장르, 건축 장르, 저널리즘 장르, 다큐멘터리 장르와 같은 분야들은 이미 19세기 사진 기술의 발명과 더불어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해오고 있다. 그에 비해 스트리스 포토그래피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장르로서 프랑스의 사진가 앙리 까르띠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의 소형 휴대용 라이카 사진기를 통해 그 탄생을 알렸다고 볼 수 있다.

 

 

살레르모, 1953. (브레송)

 

 

 

이러한 면에서 까르띠에-브레송의 사진들, 그의 삶과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들, 그의 글들을 읽어보는 것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의 고유한 특징들을 잡아낼 수 있게 해 준다. 까르띠에-브레송은 "결정적인 순간" (l'instant décisif)을 잡아내기 위해 사진기를 항상 들고 길거리에 나섰으며 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대부분 인간이 등장한다. 이는 으젠 아트제 (Eugène Atget)가 같은 파리의 길거리를 잡아낸 방식과 매우 다른데, 왜냐하면 아트제는 굳이 인간을 등장시키지 않고 삼각대를 들고 다니며 천천히, 발가벗은 도시로서의 파리를 담고자 했기 때문이다. 까르띠에-브레송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사진가로서의 자신을 "사냥꾼" (i'm like a hunter)으로 비유했으며 이는 그의 사진관이 찰나의 시간, 찰나의 모습과 매우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트제의 사진 철학은 다큐멘터리, 건축 장르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적인 접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파리, 1900. (아트제)

 

 

도시는 바쁘다. 특히 까르띠에-브레송이 살던 도시들은 메트로폴리스들로서 사람들은 매우 바쁘고 모든 것이 정신없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장소였다. 평온한 시골의 삶이었다면 찰나의 순간을 찍어야 할 의무도, 필요성도, 가능성도 도시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시골에 살다보면 대자연의 평온함, 일상의 소소함을 소중히 보게 되는데 이는 도시의 삶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루이스 캐럴 Lewis Carroll의 인물 사진들과 비교 대조).

 

이러한 맥락에서 장르로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도시의 삶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담는 것이라고 그 기본적인 특징을 잡을 수 있다.

 

동시에,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패션/화보/모델 장르와 엄격히 구분된다. 왜냐하면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필수적으로 우연적이기 때문이다. 사진 속 모델은 언제나 낯선 행인 (stranger) 이어야 하며 동시에 마찬가지로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역시 모델에게 낯선 이방인이어야 한다. 행인과 사진가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이 거리감, 이 낯선 느낌은 초상화 장르 또는 패션/모델 장르에서 강조하는 사진가와 모델의 자연스러운 분위기, 친밀함과 완전한 대조를 이룬다.

 

같은 맥락에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다큐멘터리 장르와도 구분된다. 다큐멘터리 장르는 이미 짜여진 계획 (예산, 일정, 답사)에 따라 정해진 주제에 의해 사진들을 찍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사진을 찍으러 갈 장소에 대한 그 어떤 정보가 없는 탐험 촬영이라 할지라도 그 탐험에 임하는 자세는 이미 정해진 주제에 의해 어느 정도 한계가 주어져 있다. 이에 비해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언제나, 어디서나,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즉흥성이 생명이다. 따라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를 찍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자신의 개성이나 스타일은 그가 찍어내는 사진들, 즉 결과물로서 사진, 그 안에만 있다고 볼 수 없으며,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찍고 만들어냈는지 (그리고 동시에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떤 것들은 못 보고, 모르고, 못 알아본 채로 찍고 만들어냈는지), 이러한 일련의 모든 과정이 한 명의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고유한 개성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야말로 역설적으로 사진 그 자체보다는 사진에 대한 자세가 그가 찍어내는 사진들의 의미를 이루는 더욱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점에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를 필름 사진으로 찍는 선택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런 면에서 위에서 비교한 패션/화보/모델 장르와 다시 한번 분명하게 구분된다. 미국의 철학자 넬슨 굿맨(Nelson Goodman)이 패션의 유행에 대해 말하면서 "스타일리시 함이란 곧 가장 업데이트되어 있는 것"이라 한 것처럼 패션/화보/모델 장르의 사진 촬영은 항상 그 시대와 사람들이 유행한다고 믿는 것을 잡아내는데 초점이 있다. 반면에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언제나 포토그래퍼 자신만의 개성이 시대의 현재성을 압도하기 때문에 그 언제라도 이 둘 사이의 힘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따라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작업은 일종의 내적 수련이며 내적 성찰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장르로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란 도시의 삶 속에서 찰나의 순간을 담는, 동시에 우연성과 즉흥성을 가치로 하는 사진 촬영의 한 장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는 앞으로 도시, 사람, 사진기술 등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굉장히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또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의 영원한 현재성이 도사리고 있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지금 여기, 바로 이 자리, 내 눈 앞에 벌어지는 현상, 내가 겪고 있는 이 경험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이며, 이는 마치 화가가 어느 한 사람의 얼굴을 그려낼 때 모든 삶의 경험과 직관이 동원되듯이, 삶의 모든 차원에서 이뤄지는 예술 행위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단순히 사진기를 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스냅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등 뒤에서 음흉하게 몰래 찍는 것도 아니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사진가 자신이 직접 마주하고 겪고 있는 도시 속의 삶을 대하는 자세이며,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겪는 경험을 사진으로 그려내는 행위다. 오직 이러한 행위일 때만 그것은 삶의 깊이와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을 담을 수 있는 예술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2018. 11. 20. Mersch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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