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포토그래피란 무엇인가 제 6편. 서울에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찍기

2019. 5. 29. 02:54아르티움 1.0/스트리트 포토그래피

전설적인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2018/11/28 - [곡선/사진] -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란 무엇인가 제 5편: 전설적인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30인 (3)) 잠시 쉬어가려 한다. 아직 한국에선 스트리트 포토그래피가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

 

먼저 용어의 문제. 한국에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라는 말은 생소한데,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 씨의 등장으로 조금씩 관심이 늘어가면서 이 장르의 용어에 대해 고민해 볼 때가 왔다. 길거리 사진이라고 칭하기에는 영어의 street와 우리말의 길거리 이 두 단어의 지평이 많이 다르다. street는 road, pathway, passage, route 과는 다른, urban의 색깔이 강하다. 반면에 길거리는 길과 거리가 합쳐졌는데 딱히 도시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 street는 도시의 정경을 함축하는 비유적 용법으로 쓰인다면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환유), 길거리는 지시적 용법으로, 말 그대로 길과 거리를 가리킬 때 쓰이기 때문에 번역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라고 영어를 그대로 한글로 변환하여 쓰고 있는데 이때 단점은 음절수가 지나치게 길어진다는 점이다. 영어로 street photography는 5음절인 반면, 한글로 옮기면서 무려 9음절이 된다. 이러다 보니 어떤 이는 발음의 간결함을 기준으로 길거리 사진을, 어떤 이는 의미의 정확함을 기준으로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도시 문화 자체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배경 및 과정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에 street 이라는 단어를 옮기는 게 쉽지 않기도 하거니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교통을 위한 도로가 구축되기 시작한 점 등을 미뤄봤을 때 문화사적으로도 street라는 단어를 옮기기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더욱이 사진이라는 매체 역시 서양의 발명물이자 서양 문화의 정신을 담은 결과물로서 우리말로 street와 photography를 이어놓은 합성어를 번역하기에는 꽤나 골치가 아프다.

 

 

서울 압구정동, 2018 코니카 헥사 AF, Kodak Portra 400 (자가 현상 및 스캔)

 

피사체의 문제. 한국에서는 초상권 및 불법촬영의 문제로 함부로 남을 찍기 어렵다. 원래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는 도시의 생생한 모습을 담기 위한 시도로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한국의 도시는 생생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대놓고 찍자니 갈등을 부르는 행동이 되고 멀리서 찍자니 범죄자로 몰릴지도 모른다. 문제의 핵심은 사생활과 친밀도에 있다. 피사체와 친밀할수록 사생활의 벽은 낮아지는데 예를 들면 서울이라는 도시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를 받아들이는 친밀도가 굉장히 넓은 폭으로 변한다. 지하철과 같은 공간은 굉장히 민감하여 사생활의 벽이 매우 높은 반면, 시장 길거리에서는 떡볶이 아주머니께서 웃으면서 카메라를 맞이해주시기도 한다. 서울의 이런 모습은 내가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를 찍은 다른 유럽 대도시들 (파리, 리옹, 런던, 쾰른, 비엔나 등)과 사뭇 다르다. 유럽 대도시들의 사람들은 피사체가 되길 꺼리지 않는다. 이는 도시 자체가 관광지로서 사람들은 그 안에서 서로 찍고 찍히는 장소로 인식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도 최근에 들어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발돋움하고 있지만 아직 그 역사가 길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 사람들은 꽤나 민감하게 반응할 때도 있다. 서울의 이러한 역동성과 다양성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에게 극복할 수 없는 딜레마인가? 아니다. 서울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에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회의 장소다. 사생활과 친밀함 사이의 빈틈을 포착할 수 있는 포토그래퍼의 작품들을 통해 지금 서울이라는 도시의 색깔이 분명히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는 숨어서 찍지도, 대놓고 찍지도 못하지만 숨지도 대놓지도 않고 찍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은 공식처럼 주어질 수 없으며 그때 그곳마다 느낌으로 찾아가야 한다. 새삼 놀랍지도 않게 이것은 사실 모든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의 숙원이다, 찍는 손마다, 걷는 발마다, 마주치는 얼굴마다.

2019.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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