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필름 카메라를 쓰는 이유 - 디지털 문명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

2018. 8. 28. 12:10아르티움 1.0/스트리트 포토그래피

 

 

 

 

집에서 스스로 필름을 현상하고 스캔하는 작업을 설명하는 글을 몇 개 올리려고 한다. 

그 긴 과정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래도 중요한 말이 있어서 조금 적어본다.

 

 

 

 

 

나는 왜 필름 카메라를 쓰는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디지털카메라가 19세기와 20세기의 필름 카메라를 완전히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 배경에는 사진기 자체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즉 처음에는 회화의 연장선상에서 예술적 창작의 도구로 발명된 카메라가 나중에는 순전히 재현의 도구로만 쓰이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물론 디지털카메라를 지금도 창작의 도구로 쓰는 소수의 예술가도 있지만 (사진을 전공으로 배운다면 이러한 면을 집중적으로 배울 것이지만...),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순간을 곧바로 찍어내기 위해" 디지털카메라를 든다.

 

 

 

 

 

 

 

 

 

이처럼 "담는 행위" 자체를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디지털 문명에 들어서면서 여러 변화를 겪는다. 필름 카메라를 쓸 때만 하더라도 하나의 필름에 찍힌 이미지는 그것을 현상해야만 그 안에 담긴 것을 비로소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반면, 디지털 카메라는 사진을 담자마자 곧바로 그 담은 것을 볼 수 있다. 담은 것을 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디지털 문명의 정신에 드러나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곧 담는다는 행위 자체가 더 이상 순수한 의미에서 "담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담는 즉시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결과물을 보는 행위가 담는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담는 행위는 더 이상 그 자체로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는 유령적인 단계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하나의 사진을 담는 순간 이미 그 자체로 목적이 달성되어 버리기 때문에, 담긴 것도, 담는 카메라도 아무런 유의미한 기능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오직 실용적인 기능만이 극대화되어 (디지털) 카메라는 이제 순간을 담기보다는 "순간을 소유하기 위해", 혹은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순간을 쓸어 담기 위해" 사진을 찍는 도구가 되어 버린다. 어떤 하나의 풍경은 이제 "나의 것"이 되어 버리며, 나는 그 풍경들을 디지털 파일이라는 형식으로 소유한다. 그리고 이처럼 소유 형식 역시 디지털화되어 체험으로서 소유가 아닌 수집으로서 소유로 변모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찍는 내 눈 앞의 풍경들은 내 것이 되며, 디지털 파일의 메타 데이터 속 정보들은 내가 소유한 그 장면들에 대한 더 세세한 부분까지 내 정신적 소유물인양 여기게 된다. 카메라는 원래 창작의 도구로부터 시작하여 재현의 도구를 지나, 이제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수집의 도구가 된 것이다.

 

 

 

수집과 소비의 측면에서 디지털 카메라는 장점이 많다. 무엇보다 필름을 계속 사야 하는 비용적, 시간적 번거로움을 덜 수 있기에 매우 경제적이며 실용적이다. 또한 결과물을 보기 위해 필름을 현상하는 시간이 없으므로 시간의 소비가 극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내가 쓸 수 있는 다른 시간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필름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며 다 찍은 필름이 설령 없어지면 어찌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현상 도중 필름이 망가져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소중한 추억들에 대해 걱정할 노파심이 들어설 자리도 없다. 하나의 사진을 찍는 순간 그 장면은 내 것이 되며 내가 원하는 만큼 나는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길거리 사진 (street photography,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를 주로 찍는 내 입장에서 보자면 디지털 카메라는 너무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디지털카메라를 쓰기를 그만뒀다. 물론 디지털카메라, 특히 라이카 디지털카메라 (Leica M 시리즈)를 쓰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도 많은데, 그들의 방법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내게 보이는 디지털카메라의 단점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들의 입장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게 보이는 디지털 카메라의 단점은 내가 길거리 사진을 찍는 이유에 비추어 볼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인스타그램에서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사진작가 또는 사진 작품 페이지들, 그리고 파리의 여러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사진전을 가보면, 디지털카메라로 길거리의 순간을 잡아낸 사진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그 사진들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순간이 내가 필름 카메라로 돌아서게 된 순간과 일치하는 것을 보면, 내가 현재 스트리트 포토그래피의 경향에 근본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길거리 사진들의 공통되는 특징들이란 곧 바쁜 도시나 길거리의 모습 중에서 우리가 흔히 보지 못하는 특별한 순간들을 담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특별함에는 소재 자체의 특별함 (인물의 독특함) 또는 빛의 특별함 (구조물과 그 빛의 움직임), 나아가 구도의 특별함 따위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 속에서 그러한 특별한 순간들을 잡아내는 사진작가들에게 열광하며 사진기의 주된 기능은 그러한 "특별한" 순간들을 담아서 드러내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길거리 사진을 찍는 이유는 이와는 다르게 순전히 내면적이다. 내가 사진을 찍는 목적은 외적으로 모두가 열광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내가 느끼는 그 길거리의 느낌을 그려내어 다시 그 작품을 접했을 때 그 느낌을 또다시 살아보기 위해서다. 모든 장소에는 내가 그 공간과 친밀하게 몸과 마음으로부터 나누는 깊은 대화가 있으며, 그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의 일환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렇기 때문에 난 어떤 곳의 사진을 찍기 전에 사진기 없이 그 장소를 하루나 이틀 정도 먼저 지칠 때까지 다녀보고 느낀다. 그 장소와 인사를 하지 않고서 사진을 찍는 것은 장소를 존중하지 않고 내 존재를 강제로 그곳에 덮어 씌우는 느낌이 들어서 싫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아무리 걷고 다녀봐도 그 장소와 친해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럴 때는 그곳을 찍지 않는다. 그 거리를 찍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로 이미 나는 그 거리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는 셈이다.

 

 

 

필름 카메라는 결과물을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장소와 내가 나누는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필름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내 눈이 아니다. 필름 카메라는 내가 장소와 대화를 나누는 내 입이자 내 혀다. 내 마음의 목소리이다. 말하는 도중에 어느 누구도 입과 혀에 신경을 쓰지 않듯이 내 필름 카메라는 나와 장소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뿐 그 이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 찍은 필름을 되감고 새로운 필름을 채워 넣는 순간 잠깐 나와 장소는 침묵에 휩싸이지만 그것조차 어둠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시선처럼 느껴질 뿐...

 

 

 

이것이 디지털 문명 시대에 내가 필름 카메라를 쓰는 유일하고도 본질적인 이유다.

 

 

 

2018. 8. 28.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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